독일은 전 세계적으로 비교적 앞선 여성복지 정책과 법적 기반을 갖추고 있는 나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양성평등’이라는 개념을 헌법 수준에서 분명히 규정하고, 이를 현실로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요. 독일 연방공화국 기본법(Grundgesetz) 제3조 2항에서 “남성과 여성은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국가가 실제적인 평등을 실현하고 기존의 불이익을 제거하려는 조처를 해야 한다”라고 명문화한 점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이처럼 헌법 차원의 확고한 원칙을 토대로 독일은 여성의 권익 보호와 증진을 위한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독일 정부 내에서 여성 정책을 가장 폭넓게 관장하는 부서는 “연방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입니다.

이 부처 안에는 여성정책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과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어, 여성 관련 현안과 정책 연구, 실행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지요. 그뿐만 아니라 연방 차원만 아니라 주(州) 단위에서도 독자적인 여성부나 여성정책 전담 기구를 두어 지역별 상황에 맞춘 정책 실행과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중앙정부에서 수립한 법과 정책이 실제 지역사회에 제대로 적용되는지, 여성의 삶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점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독일이 보여주는 이러한 제도적 노력은 단순히 공공부문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사기업 내 성차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2차 평등권법’을 제정하여 고용 환경에서 여성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어길 경우 벌금을 부과하는 식으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습니다. 또한 ‘성희롱 방지법’을 통해 직장 내 성희롱을 법적으로 규정하고, 피해 여성 근로자가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였습니다.

육아 관련 제도 역시 여성의 권익과 복지 차원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부모수당 및 육아휴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출산 전후 일정 기간(출산 6주 전과 출산 후 8주까지) 법적으로 휴가를 보장받으며, 이 기간 100% 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여성(또는 합의에 따라 남성 부모 포함)이 출산과 육아 기간 경제적 부담을 덜고, 육아에 전념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현실적인 성평등을 촉진하는 장치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의 법 제정으로 완벽한 평등이 실현되는 것은 아닙니다. 1994년에 발효된 ‘여성 발전에 관한 연방 법’이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독일 정부는 2001년에 연방 행정 및 법원 영역에서 남녀평등을 더 적극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를 통해 공무직 내 여성 진출을 보장하고, 정부 내부에서부터 남녀 균형을 추구하는 데 힘을 실었습니다. 더 나아가 독신모를 위한 아동 양육 지원, 가정 폭력 피해 여성 보호, 성폭력 피해자 지원, 매춘 여성 복지 정책 등 다양한 형태의 여성 대상 사회복지 서비스를 구축함으로써 전반적인 여성 권익 향상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독일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국제지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2년 세계 성별 격차 보고서(Global Gender Gap Report)에 따르면, 독일은 135개국 중 13위를 차지하며 상위권에 속하였습니다. 독일 여성의 취업률은 71%로, 남성(87%)에 비해 다소 낮지만 높은 편입니다. 전문기술직 분야에서는 남녀 비율이 거의 동등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이 인상적이나, 동일한 직종에서도 남녀 임금 격차가 약 8% 정도 존재한다는 점은 앞으로 개선해야 할 과제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여성의 정치 참여도 주목할 만한데, 연방의회 의석 중 약 33%가 여성 의원이며, 장관급 직위에서도 3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성으로서 독일 최초의 총리 자리에 올랐던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의 존재 역시 독일 사회에서 여성의 영향력 확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독일은 이러한 여성복지 정책과 성평등 실현을 사회보장제도라는 튼튼한 토대 위에서 추진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사회보장제도는 세계 최초로 도입된 것으로, 소득 재분배를 통해 국민 후생을 향상하는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연금보험, 의료보험, 실업보험, 산재보험, 수발보험(중증 장애인을 위한 제도)으로 구성된 5대 사회보험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위험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공부조(Sozialhilfe)를 통해 사회보험 혜택에서조차 충분한 생활 수준을 확보하지 못하는 이들을 최후의 안전망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업주부나 비취업 여성의 경우 직장 생활을 통한 보험료 납부 기록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존 연금 제도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우려가 있었습니다. 이를 보완하고자 독일은 1970년대 이후 여성운동과 사회적 논의를 바탕으로 연금 제도를 개선했습니다. 비취업 여성도 일정 소득이 없어도 자발적으로 연금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여 연금 수급권을 보장하고, 아동 양육 기간을 노동으로 인정하는 제도를 도입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를 통해 출산 후 3년간 평균 취업 임금의 100%에 해당하는 연금보험료 납부로 간주함으로써, 육아에 전념한 여성도 연금 수급 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했습니다. 합의에 따라 남성도 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성역할 고정관념을 깨는 의미 있는 조치이기도 합니다.

또한 배우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미망인 연금’(Witwenrente)을 통해 생계 안정을 꾀할 수 있습니다. 이 제도는 사망한 배우자의 연금액 중 일부를 생존 배우자가 수령하게 함으로써, 갑작스러운 소득 단절로 인한 여성의 경제적 위기를 완화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독일은 헌법적 원칙부터 행정 제도, 사회보험 시스템, 공공부조, 그리고 여성의 실제적 삶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구체적 정책까지 다층적인 접근을 통해 여성복지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끊임없이 제도를 재점검하고 개선하며, 성평등을 향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는 점에서 독일의 경험은 다른 국가들에도 의미 있는 참고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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